[KS] Jazz in Korea--Josephine Baker

Frank Hoffmann hoffmann at koreaweb.ws
Thu Nov 24 06:30:54 EST 2011


Dear All:

Since the focus of the discussion is now the text itself (it should  
not only be that text, I think), I am sure you want to see that  
yourself. As mentioned, I do not have a copy of the original one. But  
here is a modern Han'gŭl version ... not the perfect setting for such  
a discussion. Yet, if you have 5 or 10 minutes to read it, you will, I  
am sure, get a clear sense of what kind of text it is. A very lyrical  
text, a dreamy language (day dream and monologic qualities).

Apart from the two paragraphs on Josephine Baker, please note these  
sentences in the 3rd paragraph:
그 소재가 작가의 손에 의하여 유기적으로 정리되고 배열되고 구성될 때 비로소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아무리 변변치 못한 작가의 변변치 못한 소설이라도 그것이 소설인 이상, 소재의 구성인 이상 인생의 그것보다는 훨씬 재미있는  
법이다.
That seems to me almost like an interpretation of this very text. The  
other two parts in bold relate to Josephine Baker. Just cutting those  
parts out, isolating
them from the rest of the text, does not do justice to the story,  
which is really a piece of literature, of constructing "home" in the  
face of a modernizing society, and an exotic and idealized woman is  
one of the tools in doing so (described to sing, with wet eyes, a  
nostalgic song, which then again reinforces the importance and  
definition of "kohyang").

Thanks!

Fr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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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항구의 밤 ─ C항의 일척(一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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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李孝石,1907-1942)

생각하지 않아도 저절로 언제든지 마음속에 쉽게 떠오르는 그런 선명하고 충동적인 추억은 평생에 극히 적을 듯하다. 지난 생활과  
기억이란 잊혀지기 쉬운 것이며─ 하기는 커다란 잊음없이 인생은 살 수 없는 것이나 ─ 기쁨도 괴롬도 봉변도 흥분도 마음속에  
오래 묵지는 않는다.

지난날의 일기장이 가끔한 개의 발견이 되고 새로운 인생의 창조같이 보이고 신선한 흥분을 가져옴은 그런 까닭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지금 공칙히 항구의 일기장이 없다. 추억의 제목으로 곰곰이 가방 속을 들칠 수밖에는 없다. 풀숲의 밤송이같이 보살펴  
찾아야만 눈에 뜨인다.

총중에서 나는 가장 점잖음은 한송이를 집어올린다. 점잖음은 가끔 재미 없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인생 그것부터가 결코 재미있는  
것이 아니다. 산만한 소재의 의미없는 연속인 까닭이다. 그 소재가 작가의 손에 의하여 유기적으로 정리되고 배열되고 구성될 때  
비로소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아무리 변변치 못한 작가의 변변치 못한 소설이라도 그것이 소설인 이상,  
소재의 구성인 이상 인생의 그것보다는 훨씬 재미있는 법이다. 그러나 추억의 기록은 구성 아닌 생짜의 소재의 나열이므로 소설적  
재미는 처음부터 그 목표가 아닐 법하다.

C항구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것은 좋은 언덕 위의 무선 전신국과 늘어진 안테나의 그물과 골짝의 푸른 웅과 등대의 헌탑과 새로  
된 부두와 삼천 톤급의 기선과 외줄의 긴 거리와 거리의 홀과 다시 언덕위의 호텔과 호텔의 식당...... 이다. 이것은 굳이  
선택된 소재들이 아니라 추억의 가지가지의 내용을 꾸미고 있는 실상의 요소들이다. 전신국의 기사는 언덕 위에서 거리를 굽어보며  
바다를 손안에 잡을 듯이 바라보면서 시시로 안테나에 도착되는 연해의 소식과 먼 바다의 동정을 자랑스럽게 말하였다. 조촘 한  
화단을 끼고 바다의 진한 배경 속에 솟은 상아탑의 등대에서는 이십 해리를 비치는 사만 팔천촉광의 프리즘의 백열등이 거의 태양과  
맛서려 하였다. 바위에서도 다시 십 미터나 솟은 탑 끝은 땅 위에 태양화하였다. 그러기 때문에 등대의 기억은 언제든지 태양과  
같이 눈부시게 마음을 비친다. 새로 꾸며진 부두에는 늘 몇 척의 기선이 대어 있어 다음 항해 준비로 몸에 화장을 베풀고  
있었다. 쇠사슬로부두 돌못에 매어 있는 신세이기는 하나 바다밖에 들릴 날을 꿈꾸고 명랑한 표정이었다. 등 뒤에서 갈매기는 물과  
집적거렸다.

나는 배의 풀리는 날을 보려고 떠나는 기적소리를 들어보려고 대상 없는 테이프라도 던져보려고 부두위에 우두커니 서 본 적이  
많았다. 그 항구에 있는 그다지 친분도 두텁지 못한 한 사람의 영화인이 별안간 지급의 편지를 보내제작의 시일이 급박하였으니  
원작을 한편 속히 써 보내 달라고 청하였다. 뱅크롭트가 나오는 종류의 재미있는 항구의 이야기를 꾸며보려고 그제서야 나는  
C항구에 자주 다니며이야기의 배경될 만한 거리를 보살폈다.

창고, 어장, 술집, 행길......을 충실히 거쳐 보았다. 그러나 영화인에게서는 다시 소식이 없었다. 아마도 물었던 자본주를  
놓쳤음이 확실하였다. 마음의 무거운 짐을 벗은 듯하여 차라리 나에게는 시원한 노릇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기억 속에서 가장 즐거운 것은 호텔에서 먹는 과실 ─살구맛이었다. 미각은 가끔 시각보다도 더 선한 인상을 주는  
것인 듯하여 그날 밤 호텔 식당에서 먹은 한 접시의 살구의 맛이란 잊기어려운 귀한 진미였다.

철 아닌 2월에 먹은 개살구 아닌 양살구의 맛인 까닭이었을까.

그날 밤 항구의 극장에서는 바다를 건너온 유명한 재즈 가수의 독창회가 있었다. 미국출신의 고명한 그가 수는 만주로 연주 여행을  
떠난 도중에 항구에 들린 것이었다. 그 특색 있는 이국적 여류가수의 등장이 항구로서는 드문 호화로운 기대였다. 시절의 인기였다.

나는 R시의 유일의 차점〈동〉의 축들과 한패가 되었다. 집에서 R시까지 이십분, R에서 G까지 사십분 ─ 도합 항구까지는 차로  
한 시간이 걸렸다. 거리의 등불을 멀리 바라볼 수 있는 저녁 무렵의 드라이브란 유쾌한 것이었다. 한패라고 하여야 〈동〉의 축들  
세 사람과 나와 합 네 사람이었다. 다시 말하면 한대의 택시에 꼭 맞은 인원이었던 것이다. 부드러운 요동과 흥분으로 택시는  
가벼웠다. 항구에 이르렀을 때에는 바로 극장문 앞까지 차를 들여댈 수 있었다.

〈동〉의 축 ─ 허물없는 친구들이었다. 차점의 이름을 왜 하필〈동〉이라고 하였는지 모른다. 서반아의 귀족취미를 암시하자는  
것이었을까. 그러나〈동〉의 취미와 풍채란 무릇 귀족취미와는 먼 것이었다. 좁은 가게 안에 자리를 대부분 점령하는 것은 사단의  
초년병과 일등졸이었으니까. 거리를 헤매다가 귀영시간이 임박한 하등병들은 가게 안이 메어져라 꾸역구역 비집고 들어와 더운 차에  
황급하게혀를 데우는 것이었다. 커피 한잔이라도 즐겁게 마시려면 고요한 밤기회를 탈 수밖에는 없었다. 젊은주인은 동시에 삼류급  
지방신문지사의 기자였다. 걱실걱실 말이 헤프고 자랑이 많았으나 그만큼 속은 날탕인 ─ 그런 친구였다. 과거에 큰 투사였던 척이  
말하였으나 믿을 바 못되고 다만 무산당 선거의 후원연설을 나갔다가 톡톡히 봉변하고 고생하였다는 구절에는 약간의 진실이 보였다.  
아내가 광산에 태어났으므로 처남도 역시 광부의 아들이었다. 교육은 받을만치 받았으나 할일 없는 룸펜인 그는 매부를  
쫓아나와〈동〉에 기식하여 말하자면 쿡 노릇을 하는 셈이었다. 매부와는 대차적인 성질이나 그러나 말이 헤픈 것은 일반이었다.  
학교 때 파업을지도 하다가 반대파에게 등줄기에 칼침을 맞은 ─ 기다란 허물이 그의 큰 자랑이었다. 그의하는 말을 아무 반문과  
거역없이 받아들임으로써 그는 나를 좋은 친구로 여기는 모양이었다. 어떻든 나는 차를 마시기 위하여 허물없는 이야기를 듣기  
위하여 친히 다녔고, 그러므로 인하여 또 그들의 친구인 한 사람의 토목기사와도 알게 되었다. 토목기사는 그곳에 올때에는 온전히  
직업을 떠나 그의 직분 외인 음악이야기와 문학 담에 열중하였다. 그러므로 그와도 전혀 사귐의 인연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  
밤의 한 축이라는 것은, 즉 이토목기사와 신문기자와 그의 아우의 세 사람이었던 것이다.

누렁둥이 조세핀 베이커는 무대에 피어난 한 송이의 그늘의 꽃이었다. 결코 화려하진 않은 조촐한 그늘의 꽃이었다. 그의 노래는  
요란한 문명의 노래가 아니라 고향을 그리워하는 안타까운 노스탤지어의 노래였다. 라이트를 받아 젖은 듯이 빛나는 그의 눈은  
눈물에 젖은 바로 그런 눈이었다. 허공을 향한 코, 다문 입 ─ 모든 것이 그의 슬픈 노래를 효과 있게 하기에 족하였다.  
흥얼흥얼 코끝을 낚는 노랫가락은 그대로가 바로 목메이게 느끼는 울음 소리였다. 스텝을 밟는 부드러운 장단도 마음을 애닯게  
간지렀다. 그를 보고 듣고 있는 동안 나는 한결같이 마음속에 형상 없는 ‘고향’을 느꼈다. 잃어진 ‘고향’이 그리웠다. 무대의  
그의 자태는 ‘고향’ 그거라도 같이 그립고 친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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